[계간 수열, 가을호로 참여한 글입니다.] 서랍을 뒤적거리던 손이 하아, 하는 긴 한숨과 함께 멈춰졌다. 분명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어느 날 밤, 내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쓰레기통으로 향했던 것이 생각났다. 팅팅 붕어처럼 부어오른 눈과 얼굴이 오늘은 꼭 집에만 있어야한다고 알리기라도 하는 것 같아 침대에 풀썩 누웠다가, 침대 옆 그 ...
누군가 그랬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한때 난 그 말을 믿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 속에 살고 있는데 나 혼자 다른 세계에 사는 것 마냥 동 떨어진 체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이었다. 당장 학교만 가도 그랬다. 다들 별 걱정 없이 부모님이 하라는 공부를 하고, 그 비싼 학원을 다니고.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해 보였다. 나는 정말 죽어라 노력...
“아빠, 책 읽어주세요.” 서연이 동화책을 품에 꼭 안고 명수의 옆에 누웠다. 9시, 서연의 취침 시간이었다. 서연은 저녁을 먹고 나면 한참을 그림책을 가지고 놀다가 양치도, 세수도 다 하고 나서 책을 읽어주는 명수의 옆에서 잠이 들곤 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명수의 옆에서 아빠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던 서연이 명수가 읽던 것을 멈추자 아빠? 하고 불렀다....
서연은 6살의 여자아이였다. 딱 그 나이 대에, 뽀로로를 좋아하는. 티비 속에 뽀로로가 나오면 가만히 앉아보다 노래가 나오면 서서 춤을 추기도 하는 딱 6살 아이. 아빠, 저건 뭐예요? 아아, 그럼 그건 왜 그런 거예요? 궁금한 건 물어보고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며 답을 꼭 대답을 들어야 하고 아직 속마음을 감추지 못해 마음에 안 들면 울고 기쁘면 ...
모두들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회의를 마치는 소리에 다들 분주히 자리를 정리하는가 싶더니 들리는 목소리에 모두들 어색히 그 자리에 멈춰서 눈치를 보았다. 당장 이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럴 짬들이 아니라 그저 하하, 하고 웃으며 손에 쥔 파일을 쥔 체 옆 사람들만 슬쩍 보며 어떻게 빠져나가지 하는 궁리를 하기만 했다. “따뜻한 겨울이라.” “………” ...
술이 웬수다. 술이 웬수야. 술이 웬수였다. 술, 술이 문제였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고 또 하고, 나는 매번 이렇게 다짐만 한다. 자제를 못하는 새끼가 진짜 나쁜 새끼라는 데 그게 나인 것도 분명했다. 아마 김성규가 들으면 또 엄청나게 지랄할게 분명했다. ‘넌 성열이 일에만 그렇게 예민하더라.’ 형이라는 놈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
달그락거리며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낮게 들렸고 그 정막 가운데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고급스러운 정장을 빼입은 남자가 하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 괜히 긴장을 하는 건 나이가 있는 남자가 아닌 그 옆에 젊은 남자였다. 안 그래도 짧은 입에 이런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내가 음식을 제대로 먹고 있긴 한 건가 싶어 따라 젓가락...
제 첫사랑은 고등학교, 그쯤이었어요. 저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건 아니었고 그냥 남들과 평범했던 거 같네요. 그 아이를 보면 떨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쓰이고. 또 그 아이가 추위를 조금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이 되면 종종 핫 팩을 챙겨주곤 했던 거 같아요. 대놓고 티는 못 내겠는데 신경이 쓰이니까 그렇게라도 표현을 했던 거죠. 사실, 지금이라도 그...
달달거리며 떠는 다리가 한없이 초조해보였다. 김성규, 김성규……. 벌써 다섯 번째 거는 전화. 이제 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지만 여전히 상대는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는지 무심하게도 몇 십번이나 듣고 있는 신호음이 또 들렸다. 성규의 집 앞에 있은 지도 벌써 두 시간이 넘어갔지만 김성규는 보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제발 좀, 받아. ‘………’ 그리고 핸드...
“아빠, 아빠아-” 쫑쫑 걷고 있던 발걸음이 멈추고 조그마한 손이 명수의 손을 붙잡았다. 응, 아들. 명수가 아이의 말에 메고 있던 노란 유치원 가방을 다시 메더니 쪼그려앉아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으움. 아이가 명수를 똘망한 눈으로 보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쩌거, 먹고 시퍼요.” 아이의 짧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다름이 아닌 길거리에서 파...
아침이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는 듯 강한 아침 햇살이 눈가로 내려앉았고 그 햇살을 무시할 수가 없어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고, 뜨고, 다시 감고. 그 무의미한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마지막엔 눈을 뜨는 걸로 마무리했다. ‘좋아해서.’ ‘………’ ‘내가 김성규 너 좋아해서.’ 떠오르는 어젯밤의 기억에 다시 눈을 꾸...
악연인 것이 분명했다. 댁으로 모실까요. 비서의 말에 명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조여 오는 넥타이를 풀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고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한 기분도 들었다. 또 어디서 몸이나 굴리고 있으려나, 오늘은 또 누굴 상대하며, 얼마를 받고, 밑에서 신음을 흘려대며, 뒤에서는 또 얼마나 욕하고 있을까. 짜증 나게도, 계속 생각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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